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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동반자 ⑤ “그럴 수는 없습니다


가평 기숙대안학교 뒤에 마련된 ‘컴패션’에서 노는 파슈, 요셉, 다윗, 그리고 성탄이(왼쪽부터)

가평에 음악영재를 키우기 위한 기숙 대안학교가 있다. 그곳에는 우리가 구조한 개들이 학생들과 함께 지낸다. 우리는 그 학교 교장 신부님에게 대안학교 학생들의 정신적이며 심리적인 치료와 성장을 위해 반려견들과 함께 생활할 것을 제안했다. 이 학교 기숙사 뒤에 울타리가 쳐진 넓은 풀밭 정원과 반려견들을 위한 하우스가 있다. 이곳에는 다른 곳에서 온 ‘파슈’라는 이름을 가진 보더콜리와, 우리가 구조한 진돗개 믹스견 다윗과 요셉, 그리고 몸집이 큰 리트리버 성탄이가 지내고 있다.


다윗, 요셉, 그리고 성탄이는 그 전에 방치되어 있거나 학대를 받던 개들이었다. 우리는 지속적인 설득과 노력을 통해 주인들로부터 소유권을 받아내 이곳에 안착시켰다. 네 마리 개들은 과거의 상처 때문에 서로 어울리지 못하고 싸우기 일쑤였다. 이 아이들은 지속적인 관심을 통해 이젠 이제 서로 신나게 논다. 기적이다. 학교 뒤에 마련된 풀밭에서 하루 종일 뛰어 논다. 회색 늑대에서 사육된 개로 진화한 개들은 인간이 만물의 영장으로, 오늘날 문화와 문명을 개척하는데 결정적이었다. 인류가 아직 농업을 발견하기 전, 채집-수렵 생활을 할 때, 개들은 효율적인 사냥을 위한 파트너였다. 전기가 발명되기 전, 인류는 밤을 무서워했다. 그러나 청각과 후각이 민감한 개들은 인간이 밤에 편히 쉴 수 있도록 보초를 섰다. 이 대안학교 학생들은 네 마리 개들의 부모가 되어, 매일 사료를 제시간에 주고, 하루에 두 번씩 정규적으로 산책을 시킨다. 서로 의지하며 최고의 가치인 연민憐憫을 가르치고 배우고 있다.


오늘은 우리가 그 학교로 가는 날이다. 그 반려견들이 그곳에서 잘 지내는지 보기 위해서다. 우리는 몇 달 전, 다윗과 요셉의 중성화 수술을 위해 동물병원에 입원시켰다. 그 당시 다윗은 검사결과 심장사상충에 감염되었다고 판명되었다. 다윗을 관리하는 학생이 지난 4주 동안 심장사상충 약을 하루도 빠짐없이 복용시켰다. 오늘은 다윗을 다시 데리고 동물병원으로 돌아가, 그 병 치료에 진전이 있는지 알아보는 날이다.




우리는 저녁 늦게 노비따스 학교에 도착했다. 학생들은 모두 잠든 고요한 밤이다. 우리가 이들이 뛰어 놀며 거주하는 장소인 ‘컴패션’에 들어섰다. 칠흑 같은 밤이지만, 파슈, 다윗, 요셉, 그리고 성탄이는 우리가 온 것을 알고, 이미 컴패션 입구에 두 발을 올려놓고 기다리고 있다. 그들은 이산가족을 만난 것처럼 기뻐 날뛰었다. 인생에서 이렇게 나를 반기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이 행운이다. 이들은 온몸을 흔들고 점프를 하고 우리를 반겼다. 특히 성탄이가 내 주위를 50kg이나 되는 커다란 몸을 움직이면서 30바퀴나 돈다. 이들 하나하나가 몸도 건강해지고 얼굴도 밝아졌다. 이들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하여 보고 있는 나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졌다. 우리는 보슬비가 오는 저녁에 진흙탕 속에서 이들과 함께 한참 뛰어 놀았다. 반려견들은 인간들에게 그 순간에 몰입하는 즐거움을 일깨워준다. 이들은 순간을 영원처럼 사는 영적인 존재들이다.


우리는 다른 반려견들을 남겨두고, 진흙으로 만신창이가 된 다윗만 데리고 갈 참이다. 다윗은 친구들과 따로 떨어지는 것이 싫어 한참 버틴다. 오랜 설득과 간식 덕택에, 다윗은 마지못해 자동차에 올랐다. 다윗은 자동차 앞자리 바닥, 아내 앞에 앉았다. 다윗은 내일 아침 한남동 동물병원에 입원하여 심상사상충 검사를 다시 받을 예정이다. 밤 10시 30분이다. 우리는 서울로 가기 위해 설악 IC로 들어갈 참이다. 그런데 난감한 문제가 발생했다. 자동차 연료 게이지를 보니 연료부족으로 빨간 색이 들아 와 있다. 이곳에서 서울 병원까지 거리는 55km정도다.


우리는 항상 주유하던 설악 IC 입구에 한 주유소로 향했다. 다행이 주유소 건물 이층에 불빛이 보인다. 아마도 사장님이 남은 일을 마무리하기 위해 계신 것 같다. 사장님은 이층 창문에서 우리가 주유기 앞에서 가만히 정차하는 것을 보고, 나왔다. 그는 이와 같이 무리한 요구를 하는 예의가 없는 운전자들을 종종 만난 게 틀림없다. 사장님은 우리 앞으로 다가와 “연료가 다 떨어지셨군요. 가득 채우면 되겠습니까?”하고 친절하게 묻고 주유하기 시작하였다.


이윽고 장구한 시간과 같은 주유시간이 끝났다. 우리는 앞 자동차 유리문을 활짝 내리고“사장님, 감사합니다. 이 늦은 시간에 불편을 끼쳐드려 죄송합니다”라고 인사를 건냈다. 사장님은 우리를 알아보고 “아, 교수님이시군요. 괜찮습니다. 제가 있으면 아무리 늦어도 언제라도 불러주십시오.” 사장님은 카드를 받으면서 앞자리에 앉아 우두커니 그를 바라보는 온몸이 진흙으로 범벅이 된 다윗을 보고 놀랐다. “이 개는 뭐에요?”


나는 다윗을 데리고 병원에 데리고 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내 ‘매일묵상’ 글과 <위대한 동반자> 연재의 애독자이기 때문에, 다윗이 누구인지 기억하였다. 나는 다윗이 집에서 함께 지내는 반려견과 똑같다고 말했다. 나에겐 다윗이나 길거리에서 떠돌아다니는 유기견이나, 1m줄에 묶여 평생 학대당하는 무명의 개나, 아내와 내가 집에서 애지중지 키우는 샤갈-벨라-예쁜이나 마찬가지다. 사장님은 우리에게 묻는다. “교수님, 저도 개를 오랫동안 키우고 있어요. 자신의 개를 정성스럽게 키우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하고는 상관이 없는 학대받고 있는 개를 구조하여 입양시키고, 이렇게 병원에 데리고 가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는 심각한 표정을 지으면서 묻는다. “무슨 계기契機가 있어 이런 일을 하십니까?” 우리는 이 질문을 받고 당황했다. 시골에 10년 정도 사니 묶여있는 개들이 눈에 들어왔고, 이들의 고통이 점점 우리의 고통이 되었다. 사장님이 질문하신 ‘계기’를 정확하게 꼭 집어 말할 수가 없었다. 무엇이 우리를 그렇게 행동하도록 만들었을까? 우리 자신도 그 계기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그는 내 카드를 들고 한참 멍하니 서 있었다. 그리고 “정말 이 개가 교수님이 키우는 개처럼 사랑스럽습니까?” 내가 “그렇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알고 있고 신봉하던 가치관에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아직도 내 카드와 영수증을 들고 한참 서 있었다. 그는 나에게 카드를 돌려주면서 말을 건냈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그럴 수 있다. 다윗의 행복은 내가 키우는 반려견들의 행복일 뿐만 아니라, 우리의 행복이기 때문이다. 경춘 고속도로를 타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 내내 알 수 없는 이유로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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