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이와 탄이 『내가 만난 개』

지난 주 수요일(1월 15일) 나는 아내와 함께 고속도로를 타고 서울로 달려가고 있었다. 뒤 자석에는 열흘 전에 운명적으로 만난 한 달 정도 된 진돗개 백구과 흑구가 이동 커넬 안에서 초초하게 우리의 말을 듣고 있었다. 아니 그들은 우리의 생각을 읽고 덤덤하게 앞으로 일어날 일을 수용하는 것 같았다. 차를 타고 1시간 넘게 여행하는 동안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다. 이들이 내 삶에 들어온 것은 그 일주일전 1월 8일이었다.



아내가 집으로 들어왔는데 몰골이 말이 아니다. 전쟁터에 다녀온 것처럼, 파카와 신발에는 잔뜩 흙이 묻어 있었고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달려있었다.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진돗개 새끼 두 마리를 데리고 왔어요!” 아내가 삼년 전 읍내에서 온몸에 진물이 흐르고 있는 유기견을 데리고 온 경험이 있기에, 나는 그렇게 많이 놀라지 않았다. 순간 내 머리는 복잡해졌다. 현재 동거하고 있는 세 마리 진돗개에 두 마리가 더 생기는 것인가? 아내는 살이 에이는 추위에도 불구하고 일주일에 두 세 번 씩 동내에 묶인 반려견들을 위해 순찰을 돈다. 자신이 새로 선물해준 개집에서 그들이 잘 지내고 있는지 보살핀다.



그녀는 지난번 구출하여 수술을 받게 한 깜둥이 집에 거주하는 초등학생으로부터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누군가 삼일전에 마을 쓰레기장에 갓 태어난 진돗개 두 마리를 버렸다. 취위로 만물을 정지시킨 저녁, 아내와 아이는 그 집에서 꽤 떨어진 쓰레기장으로 달려갔다. 그곳은 사람들이 마구 버린 가구들과 음식물 쓰레기가 뒤범벅되어 얼어붙은 황량한 지옥이었다. 이 넓은 곳에서 버려진 조그만 개들을 어떻게 찾는단 말인가? 아내와 아이는 귀를 쫑긋 세우고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감지하려했다. 저 멀리 가시덤불 속에서 부스럭 소리가 들렸다. 그들은 동토의 땅 가시덤불에서 새끼 강아지 두 마리를 건져냈다. 한 마리는 백구고 다른 한 마리는 흑구다.



아내는 구출한 개들을 가슴에 품고 집밖 별도의 공간에 임시거처를 마련하였다. 나는 그곳으로 달려갔다. 아내는 형용할 수 없는 악취로 뒤덮인 이들에게 소중하게 아끼는 이불을 꺼내어 보금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이불은 아리마대 요셉이 예수의 시신을 감쌌던 세마포와 같았다. 요셉은 십자가에서 처형당한 예수의 시신을 내려, 자신의 장례에 사용할 고운 천인 세마포로 감쌌다. 아내의 마음이 아리마대 심정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이곳에 라디에이터를 켜주고 따뜻한 죽을 먹였다. 이들은 오랫동안 굶주려 처음에는 입을 벌리지 못할 정도로 허약했지만 약간의 음식을 섭취한 뒤, 이내 깊은 잠을 자기 시작하였다.



나는 가만히 앉아 새로운 식구들을 응시하였다. 며칠 동안 눈비를 맞아 온몸을 쉴 새 없이 떨고 있었다. 태어난 지 한 달 밖에 되지 않은 생명의 눈이 이토록 슬플 수 있을까? 내가 본 눈들 중, 가장 절망적이며 자포-자기하는 눈빛이었다. 삼일동안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우리와 운명적으로 조우한 것이다.



반려견은 그 주인의 운명을 바꿔 도반이 된다. 8년 전, 50세가 되던 해, 내 삶에 들어온 두 마리 진돗개 샤갈과 벨라는 내 운명을 극적으로 변화시켰다. 나는 당시 인생의 새로운 전환점을 모색하고 있었다. 중세 시인 단테는 수명을 70년으로 잡고 35세가 되던 해에, 자신의 운명을 바꿀 <신곡>을 저술하기 시작하였다. <신곡> 지옥편 제1곡 첫3행은 이렇게 시작한다. “(1) 우리 인생이란 여정의 한 가운데서; (2) 저는 어두운 숲 곳에서 헤매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하였습니다. (3) 그 숲속은 제 삶의 지름길이 숨겨진 장소입니다.”



100세 인생을 위해 건강을 관리하는 나로서, 51세에 삶의 새로운 계기가 필요했다. 단테를 지옥과 연옥을 잘 통과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었던 그의 스승이자 친구인 로마 시인 베르길리우스처럼, 샤갈과 벨라는 나의 멘토이자 스승이다. 나는 이들과 함께 살기 위해 마당과 자연이 있는 시골로 이주하였다. 만일 그런 운명적인 만남이 없었다면, 나는 책을 한권도 저술하지 못했을 것이다. 샤갈-벨라는 새벽명상의 동반자로, 카르낙 신전의 스핑크스처럼 가만히 앉아있다. 명상이 끝나면, 어김없이 나를 데리고 들과 산으로 데려간다. 그리고 걷기, 뛰기, 호흡하기, 관조하기를 지난 8년 동안 훈련시켜왔다. 나에게 그들은 베르길리우스가 되었다.



나는 그전 일주일(1월 8일-13일) 동안, 샤갈-벨라와 산책운동을 한 후에, 새끼 흑구와 백구를 품에 안고 공터로 데려갔다. 깊은 잠에서 깨어난 아이들은 첫날부터 처음 밟는 풀밭에서 제 세상을 만난 듯 뛰어놀기 시작하였다. 처음 밟아보는 땅, 처음 맡아보는 풀냄새, 저 높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햇살과 함께 춤을 추며 뛰놀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 안에 존재한 고귀한 생명력이 기지개를 펴고 자연과 하나가 되었다. 이런 천사들이 나에게 오다니 나는 운 좋은 사람이다. 이들은 나에게 단테의 베아트리체였다. 가야할 길을 몰라 헤매는 나에게 등불이 되었다. 베아트리체는 혼돈에 빠진 단테에게 <신곡> 지옥편 제1곡 70-73행에서 이렇게 말한다. “저는 당신을 천국으로 인도할 베아트리체입니다. 나는 당신이 가고 싶은 그 장소인 천국에서 왔습니다. 사랑이 나를 움직였습니다. 사랑이 나로 하여금 당신에게 지금 말하게 만듭니다.”



나는 매주 화요일 아침, 서울에서 도반들과 공부한다. 30-40명이 지난 4년 동안 공부해왔다. 나는 일주일전 1월 14일 아침, 공부를 마치고 흑구와 백구가 집 마당에서 뛰어노는 영상을 도반들에게 보여주었다. 불과 26초짜리 영상이었다. 이 영상이 마치자마자, 한 분이 손을 들고 말했다. “제가 입양하겠습니다.” 나는 그의 결단이 갑작스러워 당황하였다. 그러나 그 결정은 운명적으로 당연했다. 그는 내가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가장 먼저 손을 건네 준 사람이었다. 나는 그의 눈에서, 아내의 눈에 보았던 눈물을 볼 수 있었다. 그의 겸손하지만 단호한 말에서 확신을 느꼈다. 진돗개는 다른 개들보다도 주인의 확신을 요구하는 동물이기 때문에, 그와 이 아이들의 만남은 운명적이라고 생각했다.



나와 아내는 흑구와 백구와 함께 서울로 가고 있었다. 우리는 설레는 마음으로 도심 한복판 그의 집에 도착했다. 그의 집 옥상에 있는 정원에 흑구와 백구를 풀어주었다. 찬란한 햇빛이 쏟아져 내렸다. 겨울 풀잎 사이사이를 힘차게 뛰놀며 새 주인을 바라보았다. 그는 또한 한참 바라보다 품에 안았다. 그 모습은 사랑과 존중과 담은 정성스런 포옹이었다.



그는 말했다. “아! 이런 느낌이군요.” 아내는 그에게 말했다. “1년만 헌신하십시오. 그러면 이 아이들은 15년 동안 영감이 되어줄 것입니다.” 그의 시선이 반짝였다. 그는 이들과 함께 헤쳐나 갈 미래를 상상하고 있었다. 흑구와 백구는 집안으로 들어 와 이리저리 탐색하다가, 어느새 우리의 발등위에서 평안히 잠들었다. 운명運命은 우연을 필연으로 만드는 신의 섭리다. 흑구와 백구가 새로운 주인의 삶을 바꿀 것을 확신한다. 신은 낯선 자의 모습으로 우리 주위에 숨어있다. 일주일전 가장 처참한 곳에서 발견한 신이, 새로 만난 도반의 운명을 어떻게 변화시킬지 궁금하다.